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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역사프리즘/현대정치사

<꼬꼬사4 의료계 국가시험 잔혹사>파일럿-1969년 약사 국가시험 집단 보이콧 사건, 그리고 머리글

꼬꼬사 4편 보건의료인 국가시험 잔혹사

 

<꼬꼬사 4편> 파일럿 - 1969년 약사 국가시험 집단 보이콧 사건 & 머리글

- 기록되지 않은 저항. 그들에게 69년의 봄은 어떠했을까.

 

정인숙이 살해당하기 한 해 전이었다. 1969년의 가을, 정국은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과 테러, 시민의 투쟁과 저항으로 들썩였다. 6월에는 누군가가 김영삼이 탄 차에 질산을 뿌렸고, 주범으로 지목받았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그해 10, 3선 개헌이 끝나자마자 토사구팽 당한다. 박근혜 탄핵으로 사이비 교주 최태민의 실체가 입길에 오르내렸지만, 사실 이미 이 때부터 박정희 정도령론과 같은 샤먼적 광풍이 노골적으로 정치판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모든 것은 박정희 1인 만을 위해 돌아갔다.

 

학생은 시위를 주도했다. 사실상 삼선 개헌의 사전작업이었던 1967년의 6.8 부정선거, 동백림-민비련 사건 등 각종 간첩조작사건이 연이어 학계를 뒤흔들자, 곳곳에서 학생시위가 이어졌다. 민주화의 성지였던 대구의 열기는 어느 곳보다 뜨거웠는데, 경북대에서는 박 정권의 성격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며 황소파시즘 화형식이 거행될 정도였다.

 

묻혀버린 사건이지만, 사실 19692월 보건의료계열 학과에서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 약사 국가시험 당일이던 7, 70여명의 약학대학생이 자교 교정에서 국가시험거부 농성을 벌이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은 국가시험문제가 유출됐으며, 이런 시험에는 응시할 수 없다는 것. <신아일보>약사고시 보이콧-시험답안지 매매 주장이라는 제목으로 학생들의 주장, 요구사항을 상세히 보도했다.

 

일부 언론이 고질화된 병폐에 대한 도전장이라며 박수를 보냈던 발칙한무리는 14개 약학대학 중 최고 학부인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65학번 72명 전원.

 

학생들이 전문직 내부의 자정을 촉구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당시 주류를 이루던 반독재-반외세적 학생운동과는 분명 차별성이 있었다. 명분도 뚜렷했고 증거도 구체적이어서 수사나 조사가 어렵지 않는 듯 했다. 언론의 눈에도 특이했는지, 중간에 중앙정보부 발 이수근 이중 스파이발표가 있었음에도, 신문사는 꾸준히 지면을 할애하며 약사시험 부정사건을 따라붙었다.

 

그러나 서울대생의 외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의 은폐와 수사과정에서의 외압행사, 집단의 이기심 속에 속절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이들은 경희대 약학대학 대표 하 모씨 외 전국 12개 약대 대표들로부터 국가시험을 모독함은 물론 약사의 권위를 추락시켰다, 공개적으로 왕따까지 당했다5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보건복지부와 전문직군의 폐쇄성을 감안하면, 사실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였다.

 

구체제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 서울대생의 외침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역사가와 시민의 기억 속에 기록되지 못했으니,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는 사건. 하지만 적폐의 핵심엔 전문직이 있다는 서울대 신좌섭의 지적처럼 의료계의 문제가 크고 작게 이슈화 되고 있는 지금, 당시의 언론 추적과 경찰수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불과 몇 년 전까지 보건의료계 국가시험을 관통했던 폐단의 원형이 50여 년 전 매우 유사한 양태로 드러났으며, 그때의 기자들이 의료인 국가시험 관리실태의 민낯과 이에 대한 사회적 진단을 여실히 기록했기 때문이다.

 


머리글

 

로제타 홀 여사의 환갑연(출처 : CBS)


원래 정인숙-정건영의 후속으로 DJ 납치사건-여운형 테러, 흑금성을 차례로 이을 계획이었다. 쑥스럽지만 출간을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수 년 간 자못 진지하고 집요하게 자료를 모으고 준비했었다.

 

그러던 찰나에 예기치 않게 거대한 돌부리에 발을 채였다. 처음에는 잔 돌멩이인 줄 알고 파보았는데, 아뿔사. 한동안 준비했던 글감 모두를 내려놓아야만 할 만큼 높고 가파른 벽이었다. 불편한 사실이 화수분처럼 빨려나왔다.

 

4년 만에 풀어놓을 주제는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이다. 미리 설명을 드리자면, 졸자는 늙은 한의과대학생이다. 정확히 말해서, 3년 전 본과 3학년 2학기를 다니다가 휴학을 한 백수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쯤 강원도 남애 해변 가에 자그마한 의원 하나 내놓고 자전거도 타고 일도 하면서 그렇게 필부로 지냈을 텐데, 관음증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요란한 심사 때문에 근 3,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졸업준비위원회>란 괴상한 벽을 응시해야만 했다.

 

사실 대한민국에선 교육에 있어서의 평등주의가 상당히 강고하게 작동한다. 그것을 강준만의 지적처럼 개인 차원에서 자식 공부 잘 시켜 신분상승을 꾀해보자는 식의 성공지상주의가 역설적으로 왜곡된 평등주의로 발현됐다고 보더라도, 어쨌든 대한민국에는 수능이나 사시행시 등 고등고시라는 이 깔려있고, 그것이 집단적 부정으로 얼룩지거나 특정 세력의 조작-담합이 발생할 순 없다는 수준의 공정함 정도는 담보된다는 건, 아마 한국에서 입시를 경험한 먹물들이라면 크게 이의를 달지 않을 게다.

 

시험의 공정성이 얼마만큼은 전제됐으니, 우리의 어머니들이 과거 무로도 엿 만들 수 있다며 진짜로 무로 엿을 쒀서 대학교정에 뿌리고, 지방 명문 자사고에 다니는 딸내미 과외 시키려고 주말이면 헬리콥터까지 띄우는 가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그런데 변수 몇을 덧붙여본다. 특정 인원만이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고, 대부분이 합격해 시험 자체가 요식행위 수준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면, 여기에 감독기관과의 유착, 합격증이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보장한다는 조건까지 더해보자. 이곳에서의 교육적 평등주의는 어떤 식으로 발현될까.

 

2015, 필자는 상당히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합격률 95%의 시험만 통과하면 고소득이 보장되는 예비 의료인이 <졸업준비위원회>라는 조직의 간부선출을 명목삼아 벌이는 일종의 의식 현장이었는데, 이때 청년들의 입에서 세뇌, “양심선언을 막자느니 하는 굴종과 폭력의 언어가 쏟아져 나왔을 때의 감정이 생생히 기억한다.

 

매년 학교당 1억씩을 걷는다는데 정확한 용처도 분명치 않았고, 최소한의 감사도 없었다. 비밀스런 조직을 꾸린다는데 그 역할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선배에게 들었던 소문을 말해보자며 시작된 이상한 토론은 그야말로 상상과 거짓의 향연이었다.

 

‘1억의 돈은 어떻게 쓰인 다더라’, ‘어떻게 로비 한다더라노트북은 나중에 간부들이 모여서 물리적으로 파쇄 한다더라첩보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흘린 거짓일지도 모르는 소문을 가지고 수일간 떠들다보니, 기만이 판을 치는 건 당연한 일.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 가볍지 않은 것임에도 말이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수 십 년 간 누구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던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실상 졸업도 못하고, 면허도 취득할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여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국가시험관련 모든 정보 뿐 아니라 졸업까지의 학사생활, 하물며 졸업사진촬영에 사은회까지, 졸업 전 학교생활 대부분을 담당하는 건 <졸업준비위원회>라는 조직이라고 했다.

 

돈을 내고, 복종과 침묵의 대가로 얻을 약 2천여페이지의 비서에다가는, 각 페이지마다 학생 각자의 일련번호를 찍어야한다고들 했다. 특정 간부로부터 임상과목 레포트 대필을 요구받았다. 물론 이해할 수 없었다. “졸업이 깡패라는 말도 곳곳에서 들렸다.

 

상식적인 말을 하면 주변화 되기 십상이었다. 말이 좋아 주변화지, 배신자로 낙인찍혀 감시당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로 내몰릴 위험이 컸다. 나중에 들었지만, 어느 해에는 과거 극단적인 시도를 했었던 어느 예민한 학생 하나가 이 의식을 견디지 못하고 학장에게 고충을 토로했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속칭 자아비판을 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문화대혁명, 적군파 사건이나 염치없는 극우·극좌의 전위조직에서나 나올법한 단어였다.

 

필자의 휴대폰으로는 무섭다는 여학생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어떤 이는 회의에서 반대한 사람은 몇몇에게 불려나가 협박당하기도 한다는 제보를 전달했다. “완전한 파시즘.”, “여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혀를 내두르는 이도 있었다.

 

후일 이 조직의 위원장을 지냈던 이는 대학의 <졸업준비위원회>제도가 전통이라고 밝혔다. 정도와 양상은 약간씩 다를지라도 거의 매년, 한 직군을 구성할 졸업예정자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공통의 경험을 하고 있다는 정황도 접수됐다. 그 자리에 앉아있던 다수는 25세 안팎의 젊은이들이었고, 의료인으로서 향후 우리 사회의 엘리트층을 구성할 인물들이었다.

 

혹시 학연이나 위계질서에 목 맨 찌질이몇 때문에 벌어진 일일까. 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오카다 다카시는 자신의 저서 심리조작의 기술에서 대학병원의 의국제도를 심리조작기전의 하나인 터널효과가 강하게 발현되는 곳으로 거론했다. 그는 의국제도에 푹 빠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통의 화제는 의료 이야기도 환자 이야기도 아닌 인사 이야기라면서 누가 어느 부서에 갈 것 같다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고명한 선생님들 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그런 비속한 이야기를 주워 섬기는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적도 있다고 적었다

 

터널효과의 종착역이 범죄가 될지, 아니면 조직통제에서 그칠지는 열려 있을 테지만, 글쎄. ‘희생양을 택해 공포를 내면화시키고, 정보 통제를 통해 이성의 벽을 허물고, 동시에 이것이 유일한 면허취득의 방안임을 각인시켜 욕망을 부추기는 노회한 공작의 코드가 특정 세력에 의해, 조직적으로, 광범위한 범위에서, 장기간, 반복적으로 자행됐다면, 이건 군대나 응급실에서 정강이를 채인 다거나 의사 몇이 모여 인사 건을 놓고 수근덕 대는 수준의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국가시험이란 공적 절차를 매개로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까지 더해보면, 단순히 준거집단의 서열싸움이나 단순 군기잡기 수준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학교별 <졸준위>가 관리한 자금의 규모가 대표적이다. 2017년 의정부 고양지원에서 진행된 민사소송에서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XX학번 졸준위 계좌내역을 확인한 결과, 공금계좌 및 주요 간부관련계좌에 입금된 액수는 졸업준비회비 98백 여 만원을 포함하여, 최소 18천 여 만원.

 

1년 여 기간 동안 이들의 통장을 거친 금액이 2억 원에 가까웠음에도, 위원장 박 모씨, 총무 서 모씨는 재판 준비서면에서 회계내역서라는 것은 작성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통이었다는 것. 박 씨와 서 씨는 원고 임 모씨가 재판부에 신청한 문서제출명령신청에 대해 위 기수, 아래기수에서도 그랬다. 감사도 없다.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왔던 것이고 피고(박씨, 서씨)들도 그렇게 알고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답하며, 실제로 1심 재판기간 동안 회계장부나 증빙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 박 씨와 서 씨는 재판 종료 시까지 법원에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과거 의료계의 의국사건에서 일부 피의자가 장부가 없다며 보였던 모습과 유사했다. 지난 3, 필자는 이들에 대해 횡령 혐의로 형사고발장을 제출했다

 

해마다 대학을 막 졸업할 학부생이 온갖 잘못된 구조와 불법-탈법성 짙은 회계수법을 전통이라고 답습하고 내면화하는 처참한 상황. 건강과 질병현상은 단순히 생물학적, 심리학적 요인보다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여러 구조적 요인들에 의해 더욱 크게 규정되기 때문에전체 사회 구조를 건강하게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는, 질병의 사회성'이란 보건계의 오래된 담론을 굳이 다시 꺼낼 필요가 있을까. 


이쯤 됐으면 법과 제도가 미리 작동 됐어야 했다. 정부수립 직후부터 의료 면허를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특정 대학사회의 도덕적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인지했다면, 입법기관 주관부처든 누구든 나서서 그릇된 욕망이 위법으로 번지지 않도록 정책을 마련하거나, 바꿔보려는 최소한의 모션이라도 취했어야 했다.

 

교육현장에서 그런 의혹이 발생됐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 일을 하라고, 먼 나라 홉스라는 양반이 전지적 괴물까지 만들어서 공화국이라는 정체의 근거를 마련해 주지 않았나.

 

그러나 과거 수사기록과 판결문, 언론기사, 정부문서, 대학의 회계자료 등 복수의 독립된 서증에서 드러나는 정부의 태도는 결코 정상적이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을 때조차도 그 책임을 학생 간부 일부 혹은 의국 스텝 몇이 떠안거나, 기껏해야 교수 일부 혹은 하급공무원을 벌하는 선에서 사건이 봉합되곤 했다.

 

브로커나 배후는 누구이며, 돈의 흐름을 어떠하며, 흑막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근본적 진단이 이뤄진 적은 드물었다. 확인을 거듭할수록, 진단을 막는 힘과, 진단을 거부하는 힘과, 진단하기를 외면하는 힘과, 진단결과에 별 관심을 쏟지 않는 사회적 무관심만이 부각될 뿐이었다.

 

독초가 자란 건, 자랄 수 있는 씨앗과 환경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애초엔 씨앗과 그 독성을 찾고자했다. 직접 자금흐름을 분석하고 부조리 구조를 파악하여 위법사실을 규명코자 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실패했다. 가로막는 힘은 법원의 확정판결조차 거스를 만큼 막강했으며, 이들을 잘 몰랐고, 무엇보다 능력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독버섯이 자란 환경이라도 파악해 봐야했다. 앞으로 30여회, 최대 50여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조망할 대상도 바로 <의료인 국가시험> 주위의 어두운 배경과 역사이다. 전문직 영역이다 보니 정보 대부분을 소수가 독점하고 있어 사실 확보가 쉽진 않았으나, 의미 있는 자료도 다소 입수했다. 사건 자체가 비상식적이어서 다소 엽기적인 장면도 있다. 외압과 은폐에 뇌물과 담합, 적반하장과 물타기에 정부를 향한 역 소송 까지, 지저분한 복마전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부패와 담합의 흔적만 있었던 건 아니다. 역사라는 게 늘 그렇듯 가치 있는 저항과 반성, 집요한 추적의 흔적도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글 머리에 간략하게 소개한 서울대 약대생 국시 거부사건도 그 중 하나다. 특히 이 사건은 학생의 항거도 항거이지만, 심도 있는 언론의 취재가 뒷받침 됐다는 점, 또 불과 얼마 전까지 당시와 흡사한 폐단이 의료계 일부에서 드러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므로, 대략 5~6회 분량에 걸쳐 상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우연찮게 이 주제는 정인숙-정건영을 다뤘던 기존 [꼬꼬사]정일권, 김종인이라는 묘한 지점에서 연결된다. ‘바다-파래---굴따게식의 자유연상방식으로 잡다한 비사를 엮어보자던 애초 취지와 들어맞은 셈인데, 유명인의 흔적을 의료인 국가시험이라는 삐딱한 주제로 접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일 수 있겠다.

 

의료인 시험이라는 낯선 주제에 갸우뚱 하실 독자께도 양해의 말씀과 몇 가지 부연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사건을 훑어가면서 느낀 소회 중 하나는, 의계 국가시험이 시민의 관심에서 너무 멀리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여론과의 접촉면이 조금이라도 넓었다면 좀처럼 벌어질 수 없는 일이 역사 속에 노골적이고 집단적으로 발생했다.

 

어쩌면 정부는 대마불사가 돼버린 의료인 국가시험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방식으로 감춰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018년 정부예산 430조 가운데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게 보건·복지·고용예산이다여기서 의료 인력은 관계 부처 및 유관 공공기관,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각종 정부위원회 등 요로에서 중요 정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고령화가 가속화될수록 관계 예산과 의료인에 대한 의존도는 커질 것이며, 이들이 건강과 생명을 책임지는 직역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그 중요도는 높아진다. 생경한 주제이만, 미래의 주역들이 사회에 발 딛는 첫 관문, ‘국가시험을 집착하다시피 쫓아본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의 컨텐츠는 멀게는 대한민국 수립이후부터 가깝게는 10여 년 전 까지,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을 둘러싼 시험 부정의 역사가 주테마다. 현대사와 함께 현 시험 제도도 시의성 있게 다룰 예정이라, 어떤 측면에서는 고발서나 제도개선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절대평가제라는 점을 제외하면, 여기서의 시험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시, 행시, 외시 등 고등시험이나 수능, 변리사, 노무사, 세무사 시험과 형식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20178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의 의료인 국가시험 공개의무화 법안관련 검토보고서에도 “<타국가시험의 공개여부>라고 하여 변리사, 세무사, 행정사 제도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의료인 국가시험의 내용면에서는, 고차원적-전문적 의료기술, 의학지식을 묻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겠으나, 정해진 과목 당 특정한 문제를 정해진 시간 내에 응시하고 합격여부가 결정된다는, ‘제도의 측면에서는 타 국가시험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즉 무슨 침법을 쓰느냐, 무슨 종양을 어떻게 도려내야 하느냐와 같은 기술적인 지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자는 게 아니라, ‘시험이라면 응당 갖춰야할 상식과 규칙, 예컨대 감독기관이라면 공정한 시험이 진행될 수 있도록 수험장, 출제문제나 수험준비환경을 점검한다거나, 출제자라면 보안을 유지하고 양질의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거나, 수험생은 더 좋은 보건의료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책 봐서 건강하게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은, 시험제도의 보편적 당위를 심각하게 위배한 사건을 다룰 것이다.

 

거창하게 라는 말을 붙였지만, ‘비사’, ‘문제제기’, ‘야사’, ‘사료만을 열거한 자료집뭐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주셔도 상관없다. 혹여나 누락된 사실이나 오류가 있으면 객관적인 사료, 증거와 함께 말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의료인 국가시험 제도 및 실제>를 다룬 서적이나 논문이 너무 드물어 근거확보가 수월치 않았다. 주신 자료는 적극적이고 소중히 반영할 것을 약속드린다.

 

3년이 지난 지금도 한의과대학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형성돼 있고, 또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하고자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적극적 부역자가 존재할 테며, 그런 자가 포상을 받고 이후 교원의 자리나 각종 요직에 기용될 테니까. 이제 막 5월에 접어들었으니, 소위 과토”(졸준위 회의) 하느라 잠도 잘 못자고, 수업도 제대로 못 듣고, 온갖 공해와 억압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새파란 부역자는 제쳐두겠다. 다만 아닌 걸 알면서도 한 숨 만 쉬다가 결국 한 배를 탈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게 있다. 여러분이 잘못했다고 탓하거나 그렇다고 무작정 싸우라는 뜻도 아니다. 누구의 악행 때문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장에 나가면 이길 리 만무하지 않겠나.

 

지난 2, 젊은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지들과 동료들이 태움을 원인으로 지목하며 강하게 수사를 촉구했다. 언론도 적극 취재에 나섰고 비판과 지적이 잇달았다.

 

그런데 320, 경찰은 가혹행위는 없었다며 내사 종결을 발표한다. 321일 심지어 유명 진보언론의 지면에도 태움추방이란 제목의 시민단체 사진 한 장 만 걸렸을 뿐, 그 흔한 5단짜리 스트레이트 기사 한 줄 적히지 않았다. 의혹남은 수사 소식을 한 두 꼭지는 너끈히 담을 수 있는 자리는, 간호사가 몸담고 있던 대학병원 재단의 “2019년 제12XX의학상 시상 안내라는 하단광고가 차지했다. 인터넷 판에나마 적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 매년 그맘때 게재된 광고였다지만, 평소 책무를 강조하던 신문의 태도치곤 쉬이 납득하기 힘들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해결되질 않는다.

 

기획재정부의 2018년 예산발표에 따르면 보건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무려 1462천 억 원. 여러 정부 예산 분야 가운데 압도적인 1위다. 참고로 국방비는 43, 교육비는 64. 2016년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한의약산업 사업체의 매출 총액이 82천 여 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보건의료계의 몸집은 상상 그 이상이다.

 

일단 함께 알아가고자 했다. 과문한 탓에, 또 긴 세월과 은폐, 일상의 압박 때문에 놓친 게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스스로 많이 파악했다고 생각할 재학생 역시 금시초문이었던 역사적 사실이 앞으로 전개될 글에 다수 포함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의실과 술자리에서 범람할 선배가 이랬어요’, ‘누가 저렇다고 했어요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은 이제 조금 밀어두고, 근거를 가지고 함께 진실의 파편을 모아 보는 건 어떨까. 글을 쓴 취지 중 하나였다.

 

최근 경희대학교,  일부 기독교 연합 동아리에서 현재의 적폐를 끊자는 움직임이 있다는 기별을 접했다. 경희대가 다른 대학과는 여러 면에서 차별성 있는 길을 걸어왔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종교 동아리 친구들과 관계자의 소신 있는 행보도 익히 알고 있다. 함께 공부했을 때, 기괴한 일을 같이 겪지 않았나.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면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요즘 인간이 역사의 나이테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최근 자주 마주했다. 오래 전의 불행은 인간의 지독한 탐욕, 구조의 모순 때문에 벌어진 때가 많았는데, 골치 아픈 건 이런 게 시간이 지난다고 쉽게 바뀌질 않았다는 점이었다. 발현 형태만 달라질 뿐, 이 시간에도 과거의 폐습이 재발하고 재현되기 부지기수였다.

 

의과, 한의과, 약대, 치대를 모두 보유한 국내 몇 안 되는 대학이 경희대다. 이런 대학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됐으며, 구조적 흠결이든 무엇 때문이든 근자의 폐습을 장기간 유지해 왔다. 전면에서 활동했던 경희대 출신 인사가 학계와 요직에 적지 않게 포진돼 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긴 힘들 것이다. 글머리에 잠시 적었지만, 비록 약학대학일지라도 서울대생을 앞장서서 손가락질 했던 게 안타깝게도 여러분들 선배였다. 기층학생 자치조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비밀조직이 존재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 아니었나.

 

예전에 그랬다고 여러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대학과 집단으로부터의 반동이 거셀 거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다. 만약 지금의 변화 움직임에 진심이 담겼다면, 더 잘 느끼고 있을 것이다. 부디 현재의 변화가 위기만 모면하려는 회사 사장님의 위장 이혼이 아니길, 그래서 진정 새롭게 거듭나는 최고 한의과대학의 모습이길 간절히 기원한다.

 

바로 서울대 약대생 사건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사건의 의미를 온전히 읽어 내려면 사전에 짚어야 할 이슈가 꽤나 많다. ‘국가시험이라는 공적인 제도에서 이 정도의 누수가 발생한다는 건 학생 몇의 작당 때문이었다는 건 사실 어불성설이다. 전통? 문화? 만일 배임이나 거액의 횡령, 업무방해나 공무집행방해죄로 의율 돼야 할 행위가 관행으로 용인된다면, 그게 국가인가

 

설령 관행이었다면, 불법을 관행화 시켜준 문화 이상의 작위가 개입됐던 거다. 바로 그 흔적에서부터 필자의 구체적 의혹이 시작됐다. 대학과 기타 크고 작은 권력이 사법제도와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농락한 바로 그 지점부터 하나씩 뿌리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다.


배동일 forever28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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