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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야쿠자

[꼬꼬사 3-4] 정인숙 후견료는 사천억? 건달에게 '공짜는 없었다' 정인숙 후견 대가가 4천억?‘공짜충성’은 없다! 그는 과연 풍운아일까. [꼬꼬사 3-3편] 섹스, Drug, 야쿠자, 그리고 정건영[꼬꼬사 3-2] 65년 한일협정과 정건영 : 야쿠자, 한국을 '이용'하다[꼬꼬사 3-1] ‘긴자 호랑이’ 정건영과 야쿠자- 3공 커넥션.[꼬꼬사 2편]정인숙의 70년 3월, 그날의 의문들/누구의 씨앗일까[꼬꼬사 1편] 3공 최대의 권력형 섹스‧살인 스캔들 ‘정인숙사건’…진실은 무엇일까. [1977년 6월 28일, 재무위원회 국정감사장] 고재청 위원 : 장관! 정건영이는 일본국적을 갖고 있고 귀화해 버린 사람입니다. 천명기 위원 : 저당순위가 일본이다(1번인 듯) 이렇게 알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정건영씨가 일본 부동산은행에서 52억6천만엥을 꾸어 쓴데에 대해서 외환.. 더보기
[꼬꼬사 3-2] 65년 한일협정과 정건영 : 야쿠자, 한국을 '이용'하다 친일파·비리인사로 가득한 마치이 인맥 정건영과 고다마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은 65년 한일협정이다. 1965년 성사된 본 조약은 ‘한일국교 정상화’라는 취지하에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주도로 체결됐다. 기본관계(식민 지배 무효 확인), 청구권(3억 무상원조+2억 차관), 한일 어업(40해리→12해리로 영해 축소), 문화재‧문화협력 등 여러 분야의 협의 사항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3억불 배상금을 결정한 대일 청구권 부분은 위안부 문제등과 결부돼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마치이 히사유키는 어느 과정에서 개입했을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50년대부터 시작된 한일 회담과 정건영 인맥의 시발점인 재일본대한체육회 역사를 함께 추적해야한다.(재일 체육회에도 현대사의 굵직한 인물들이 다수 출현한다.) 우.. 더보기